[OSEN=백종인 객원기자] 6-4로 앞선 9회 초다. 원정 팀의 무사 1루 기회다. 타석이 꽉 찬다. 빅보이의 차례다. 카운트가 3-1로 타자편이다. 장시환이 146㎞를 몸쪽에 붙였다. 까다로운 코스다. 하지만 상대가 누군가. 가볍고, 부드러운 턴(turn)이다. 아름다운 스윙은 정확한 접점을 찾아낸다. 까마득히 솟은 타구가 폴을 맞춘다. 쐐기 투런포다.

SPOTV 양상문 해설위원이 감탄한다. “아니, 은퇴 시즌에 이렇게 잘 해도 되는 건 지 모르겠네요. 보통 이렇게 몸쪽 높은 공을 치면 80% 이상은 파울이 되거든요. 그런데 파울이 되지 않고 인필드 (타구)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기술입니다.”

그 무렵이다. 이글스 파크 3루쪽이 뜨겁다. 원정 팀 팬들이 편안한 승리를 확신한다. 갈채와 환호가 쏟아진다. 이날의 영웅을 향해서다. 반짝이는 문구가 객석을 수놓는다. 예술 점수 100점 짜리들이다.

“(3행시) 루어진다 / 체 뭐가 걱정이노 / ~옴~런~.”

“거인의 자존심 은퇴 번복 쫌.”

“대한민국 3대 마요. 참치마요, 치킨마요, 이대호 선수 은퇴하지 마요.”

14일 대전구장 롯데 응원석에 반짝인 문구. SPOTV 중계화면

14일 대전구장 롯데 응원석에 반짝인 문구. SPOTV 중계화면

이 정도면 충분히 타당하다. 팬들의 이의 제기 말이다. 은퇴 시즌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날(14일) 경기만 해도 그렇다. 고비마다 존재감이 빛난다. 첫 타석(2회)부터 공포의 스윙이다. 132㎞ 슬라이더를 좌측 담장 너머로 날렸다. 상대 선발(윤대경)을 휘청거리게 만든다. 9회 투런도 마찬가지다. 2점 차를 4점 차로 만든 안심포다. 곧바로 퇴근이 가능했다. 장비를 챙겨 덕아웃을 빠져나온다. 이미 승부가 끝났다는 사인이다.

멀티 홈런으로 타율도 올라갔다. 0.373으로 전체 2위다. 1위 호세 피렐라(0.399)를 뒤쫓는다. 최다안타 역시 2위다. 50개로 피렐라와 7개 차이다. 양상문 위원이 감탄하는 대목이다. “이대호 선수는 저 50개 중에 내야 안타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만큼 타구의 질이 탁월하다는 뜻이다.

팀의 상승세와도 밀접하다. 5월 들어 활황이다. 최근 10경기에서 40타수 17안타(0.425), 홈런 3개를 기록했다. 6연속 멀티히트 게임이다. 타점도 9개를 생산했다.

전략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3번 한동희의 든든한 뒷배 역할이다. 상대는 울며 겨자먹기다. 젊은 DH를 피해갈 수 없다. 산 너머 산, 더 큰 DH가 버티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승부해야 한다. 덕분에 우산효과가 생긴다. 반면 4번 타자는 외롭다. 끝없는 유인구와 싸워야 한다. 5번 타자가 약하면 더 그렇다. 상대적으로 스탯 관리가 쉽지 않다. 그런 불리함을 극복한 수치들이다. (DJ 피터스가 좋아지는 점이 다행이다.)

[OSEN=대전, 이대선 기자] 13일 경기에 앞서 롯데 이대호가 양상문 해설위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2.05.13 /sunday@osen.co.kr

지금 시점은 그렇다. 이별 여행이 달가울 사람은 없다. 래리 서튼 감독은 숫자로 아쉬움을 표현한다. “그는 타고난 3할 20홈런 타자예요. 나도 그런 재능이 부럽네요. 리더, 멘토로 역할이 너무 크죠. 한 10년은 더 해줬으면 좋겠어요.”

리틀 DH도 마찬가지다. “선배님이 ‘니가 잘 해야 내가 편하게 은퇴할낀데’라고 농담을 합니다.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있어요. 솔직히 짧으면 2년, 길면 5년은 더 하실 수 있다고 봅니다. 무척 섭섭합니다.”

그래도 본인은 완강하다. “남자 아이가. 이미 뱉은 말입니다. 책임을 져야 합니다”라고 못 박는다. 애틋한 스승 양상문 위원도 아쉬워한다. “솔직히 저렇게 치는 타자가 은퇴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요. (타율) 0.350 치는 타자가 그만두는 게 이상하지만, 본인의 의지는 확고한 것 같습니다.”

물론 단언은 금물이다. 상황은 변화를 만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팬심이다. 관중석 곳곳에, 커뮤니티 여기저기에, 간절함과 절절함이 이어진다. “참치 마요, 은퇴 마요…” “번복 쫌~”과 같은 애절함 말이다. 어쩌면 그런 들불이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를 멈추게 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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